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즈노미야 치카코 내친왕 (문단 편집) === 이에모치의 죽음과 그 이후 ===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200px-Kazunomiya.jpg]] 이에모치 사후의 카즈노미야. 이때 열강들이 몰려와 [[효고]]를 개항하라 압력을 넣자, [[고메이 덴노]]는 어쩔 수 없이 서양 세력을 받아들이게 된다. 카즈노미야는 이에 대해 '양이를 조건으로 여기에 시집왔는데, 이렇게 되면 내가 시집온 아무 의미가 없지 않는가?' 라고 생각하면서 [[고메이 덴노]]에게 개항의 반대의지를 표명했다. 한편 조슈 정벌 중이던 이에모치는 격전지인 [[오사카]]의 [[오사카 성]]에 머무르고 있었으나, 1866년,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. 이 소식을 들은 카즈노미야는 에도의 절에 남편의 쾌유를 빌게 하고, 의원을 오사카로 급파했다. 이러한 카즈노미야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에모치는 동년 [[7월 20일]]에 [[오사카 성]]에서 사망한다. 카즈노미야는 불과 20살에 과부가 된 것이다. 차기 [[쇼군]]은 누구로 할 것인가에 대해 모두의 관심이 쏠렸는데, 이에모치의 유언과는 달리 카즈노미야와 [[막부]]의 여러 대신들은 미토 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(德川齊昭)의 아들 [[도쿠가와 요시노부]](德川慶喜)를 차기 [[쇼군]]으로 세우기로 하고, 이에모치가 후계자로 지목한 도쿠가와 이에사토(德川家達)는 그의 후계자로 세우기로 했다.[* 이는 요시노부와 이에사토의 나이 차이가 거의 30세에 달하기 때문에 그런 결정이 나온 것이다.] 요시노부가 [[쇼군]]이 되자, 카즈노미야는 요시노부에게 여러 번 양이로 돌아서도록 요청했다. 그러나 요시노부는 이를 계속 거부했다. 동년 [[12월 9일]]에는 이에모치가 사망했기 때문에 카즈노미야도 세이칸인(靜寬院)이라는 [[법명]](法名)을 받았다. 그러나 카즈노미야는 막부로 시집온 이후에도 황족으로서의 자존심이 남아있었기에, 법명 뒤에 '미야([[宮]])'를 붙여 '세이칸인노미야' 라고 칭했다. ~~명불허전 황족~~ 그리고 [[1867년]] [[1월 30일]]에는 [[고메이 덴노]]가 사망했다. 또한 어머니 칸교인이 그즈음에 사망했다. 카즈노미야는 어머니, 남편, 오빠를 거의 한꺼번에 모두 잃은 것이다. [[고메이 덴노]]가 사망하면서 그의 아들 [[메이지 덴노]]가 즉위하였다. [[메이지 덴노]]는 조정의 주요 인사를 모두 갈아치웠으며, [[막부]]와 대립했다. 그렇기에 [[막부]]에 시집간 [[고모]] 카즈노미야를 다시 교토로 불러오길 원했다. 카즈노미야는 이때도 여전히 양이를 주장했다. 여러 세력이 [[천황]]파가 되면서 [[막부]]의 존립 위기가 닥치자, 요시노부는 [[대정봉환]]을 미끼로 [[막부]]를 계속 유지하려 들었다. [[천황]]은 [[막부]]에 통치권과 영지(領地) 등을 모두 반납하라 명했지만, 요시노부는 거부하고 황실군과 [[막부]]군이 도바-후시미 전투, 보신 전쟁으로 충돌하게 되었다. 요시노부는 이 전투에서 패했다. 그러나 [[막부]]의 여러 대신들은 끝까지 싸우자 했고, 요시노부는 반대였다. 그는 마음을 누그러뜨려 [[천황]]에 복종(항복)하기로 마음을 정했으며, 카즈노미야에게도 이 사실을 전했다. 엎친 데 덮친 격으로 [[막부]]를 다시 한 번 공격하자는 의견이 거셌으며, 이는 [[사이고 다카모리]](西鄕隆成)등에 의해 강력히 추진되었다. 이때 [[막부]]를 타도하기 위한 군대의 총사령관은 어이없게도 카즈노미야의 원래 결혼 예정 상대였던 타루히토 친왕이었다.(또한 타루히토 친왕의 전처는 도쿠가와 집안의 딸이었다)~~옛날의 동지가 지금의 적~~ ~~결혼 못하고 그냥 [[화족]]과 결혼한 게 불만이었나?~~ ~~근데 부인이 적군 집안 출신이라는 것도 함정~~ 이런저런으로 [[막부]]의 존립 위기가 커져가는 상황에서, 조정의 대신들 중 [[이와쿠라 도모미]](岩倉俱見)와 같은 막부에 대한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몇몇 인사들이 막부 응징을 주장하는 [[사이고 다카모리]]와 회담을 하여 몇몇 조건[* [[에도 성]]을 개방하고 [[막부]] 군대의 무장 해제 등.]하에 요시노부를 구하려 했다. 이는 다행히도~~?~~ 성공하여 요시노부는 이를 듣고 바로 [[에도 성]]을 개방했고 이에 따라 막부 정벌군은 에도 성에 무혈입성한다. 그러나 이 와중에도 [[천황]]의 군대에 저항하려는 몇몇 대신들이 아직도 [[막부]] 내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카즈노미야가 발벗고 나섰다. 카즈노미야는 그들에게 >"지금은 저항하지 않고 복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. [[천황]]께 충성하는 것은 도쿠가와 가문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." 라고 말했다.[* 비교적 낮은 신분이었던 [[텐쇼인]]이 중심이 되는 적지 않은 일본 사극들에서는 텐쇼인의 아이디어라고 포장되는데, 사실이 아니다.] 카즈노미야의 이러한 뜻에 조정도 마음이 움직여, 마침내 요시노부와 도쿠가와 가문을 살려두기로 정한다. 이에 대해 카즈노미야는 감사의 뜻을 조정에 보냈다. 이로써 도쿠가와 가문은 완전히 [[천황]]에게 복종하게 되었다. 요시노부는 조정으로부터 [[공작(작위)|공작]] 작위를 받았으며, 요시노부에 밀려 [[쇼군]]이 되지 못하고 그의 후계자로 전락한 [[도쿠가와 이에사토]]는 대신 도쿠가와 가문 종가(宗家)의 당주로 임명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